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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총영사관의 옹색한 불참석 이유

=LA한인회가 올해 3.1절 기념행사를 중가주의 리들리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광복회 미서남부지회,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 흥사단, 도산안창호기념재단,미주3.1여성동지회,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등 독립운동 관련 단체 6곳과 함께 한다. 누구나 참석이 가능하고 편의를 위해 버스로 함께 이동하게 된다.     LA에서 북쪽으로 200마일 가량 거리의 리들리는 한인 이민사와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이민 선조들이 하와이를 거쳐 본토 정착을 시작한 곳이자, 한인 독립운동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사업가로 성공해 막대한 금액의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김호, 김형순, 김용중 선생 등이 이곳에서 활동했다. 특히 1919년 3.1 운동 소식을 접한 이곳 한인들은 이듬해인 1920년 3월 1일 대한독립을 외치며 가두행진을 벌여 한인들의 독립 의지를 미국인들에 알렸다.     LA한인회가 이런 역사적인 곳에서 3.1절 105주년 기념행사를 갖기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이다. 지역적 울타리를 벗어나 한인 사회 대표 단체의 역할을 하겠다는 의욕이 엿보인다.     이에 반해 공관들의 소극적인 반응은 의외다. LA총영사관 측은 리들리가 관할지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관할인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측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행사 참석과 초청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참석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는 옹색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매년 3.1절을 기념하는 것은 선조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하고 이를 차세대에게도 전달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매년 반복되는 판에 박힌 형식의 기념식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LA한인회의 이번 기획은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런 노력은 한국 정부를 대표하는 공관들이 먼저 기획하고 추진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국가 정책의 효율적 시행을 위해서라면 없는 방법도 찾아야 하는 것이 공직자들의 책무다.    사설 총영사관 불참석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한인 독립운동 불참석 이유

2024-02-14

고국 그리며 지원한 독립운동이 이민사 뿌리

한국 독립기념관 자료에 따르면 미주 지역에 지정된 한인 독립운동 관련 유적지는 하와이, 쿠바를 포함해 92곳이다. 이중 캘리포니아주는 북가주와 남가주로 나뉜다. 북가주에는 초창기 한인들이 모여 활동하던 샌프란시스코, 다뉴바와리들리를 중점으로 몰려 있으며, 남가주에는 한인타운을 형성한 LA와 리버사이드에 있다.     ▶북가주   2006년 발행된 독립기념관 매거진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1905년 4월 도산 안창호가 설립한 공립회관 자리, 장인환·전명운 의사의 의거지인 페어몬트 호텔, 페리 부두, 샌프란시스코 한인사회의 공동체였던 상향한인감리교회, 대한인국민회 지방총회장을 역임한 이대위가 묻혀 있는 사이프리스 공동묘지가 유적지로 꼽힌다. 그러나 현재 한인들에 의해 보존 관리되고 있는 유적지는 한 곳도 없다.     상항한인감리교회의 경우 현재 중국 절이 운영 중이다. 한인이 운영하는 한인역사박물관이 있으나 유적지는 아니라 커뮤니티의 관심이 덜한 편이다.     ▶남가주   남가주의 경우 남아있는 유적지도 있고 보존 운동도 활발하다. 지난해 한인사회에 유적지 보존 운동이 일어난 LA흥사단 옛 건물이 좋은 예다.     지난해 흥사단 옛 단소 건물(3421-3423 S. Catalina Street)이 헐리고 재개발된다는 소식이 나온 후 LA흥사단과 대한인국민회 등이 나서서 사적지 지정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LA시 문화사적위원회도 한인 커뮤니티의 요청에 수차례 공청회를 열고 커뮤니티 의견을 수렴했으나 아직 사적지 지정 여부는 결정하지 않았다.   현재 가장 보존이 잘 돼 있는 곳은 도산 안창호의 가족이 살던 주택이다. 이 집은 1937년부터 46년까지 도산 선생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동안 부인 이혜련 여사와 자녀(안필립, 안수산, 안수라, 안필영)들이 살며 당시 한인사회의 커뮤니티 구심점이 된 곳이다.   1920년대 지어진 이 가옥은 미국의 전형적인 정사각형 단독 주택으로, 원래는 USC 주차장이 위치한 37가에 있었으나 이 지역에 재개발이 진행되자 USC는 지반을 통째로 떼어내 캠퍼스 안으로 이전시켰다.     2004년 도산 가옥을 옮긴 USC는 이후 동문과 한인 커뮤니티의 도움으로 100만 달러의 기금을 조성해 도산 가옥을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해왔으며 2009년부터 이곳을 한국학연구소로 사용하고 있다. 이 사옥은 2014년 LA시 사적지로 지정됐다.   사적지 보전이 잘 돼 있는 또 다른 곳으로는 대한인국민회 총회관을 꼽을 수 있다. 대한인국민회는 1910년 성립된 해외 한인 독립운동 최고기관이다. 미주지역 독립운동의 1번지이자 독립운동의 산실로 꼽히는 만큼 관련 자료도 굉장히 방대하다.     제퍼슨 가에 있는 대한인국민회총회관은1938년 신축된 건물이다. 지난 2003년 처음으로 복원 공사를 한 후 20년 만인 지난해 말 재단장하고 한국어와 영어로 자동으로 미주 한인사와독립사를 보여주는 최첨단 전시 시설을 설치해 한인 2~3세들의 역사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03년 첫 복원 공사를 진행한 대한인국민회는 당시 미주 한인 독립사와 이민사 관련 각종 자료와 유물을 천장에서 발견한 바 있다. 이를 관리하기 위해 2004년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이 발족했으며 이후 재단이 자료 및 전시관 관리와 운영을 맡고 있다. 당시 발견된 자료는 대한인국민회가 성립되기 전인 1900년대 초반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산된 문서들로 문건류 6300여점, 도서 및 각종 물품 400여점이다. 이 가운데에는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스티븐 저격 사건에 따른 변호사 비용 모금 내용 공립신문, 신한민보 원본 및 축쇄본 1930, 40년대 국민회 각 지방 공문 등이 포함돼 있다. 기념재단은 발견된 자료를 USC에서 디지털 작업을 한 후 한국 독립기념관에 관리 및 보존을 위해 이관했다.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옆에 있는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도 역사적인 곳이다. 1938년 신축된 이 건물은 미주 한인 기독교사를 보여주는 유적지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최근 새롭게 유적지로 등장한 곳은 한인사회의 첫 타운으로 평가받고 있는 리버사이드의 파차파 캠프다. 파차파 캠프는 도산 선생과 한인 초기 이민자들이 세운 첫 코리아타운으로 대부분 농업 노동자들인 이들이 1905년부터 1913년까지 일궜던 커뮤니티다. 당시 지역 신문 등에 소개된 기록에 따르면 도산 선생은 공산주의자로 누명을 쓰고 추방되기 직전까지 이곳에서 한인들과 살았다.   총 300여 명의 남성과 여성, 아이들이 살았지만 1913년 남가주에 들이닥친 한파로 오렌지 농사가 망하자 한인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파차파 캠프도 사라졌다.     파차파 캠프는 2012년 당시 UCR 한인 학생들이 학교 도서관에서 발견한 ‘한인 임시 거주지’라고 적힌 오래된 지도를 시작으로 지역사회와 한인사회에 남겨진 기록을 파헤치고 연구한 장태한 UC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장)의 노력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장 교수는 “중가주의 다뉴바, 리들리, 윌로우로부터 이주해온 한인들의 중심지로 이후 한인 이민 선조들에게 마음의 고향과 같은 역할을 했다”면서 “또한 국민회의 중요 회의가 개최됐던 중심지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장연화 기자신년특집 사적지 미주 상향한인감리교회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 한인사회 한인 독립운동

202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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